[JoongAng Daily] ‘파란 눈의 시조 전도사’ 데이비드 매캔 - 한국의 시인 오종문, 시조를 묻고 답하다

June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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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엔 특유의 제스처, 춤 같은 움직임 있죠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매캔(66) 교수는 말하자면 파란 눈의 시조(時調) 전도사다. 1966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을 찾은 게 인연이 돼 아예 인생의 항로를 한국학으로 잡은 그는 30년 넘게 시조에 관심 가져 왔다. 

몇 해 전부터 직접 영어로 시조를 쓰기 시작해 2008년에는 60여 편의 영어 시조를 묶은 시조집 『Urban Temple(도심의 절간)』을 펴냈다. 한국학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시조를 가르치고 직접 써보게 하는 건 물론 기회 닿는 대로 중고등학생들에게도 시조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2006년에는 시조를 포함한 한국문학 알리기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 정부로부터 한글발전유공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데이비드 매캔(오른쪽)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의 초등학교에는 대부분 ‘하이쿠의 날’이 있어 일본의 전통시를 배운다. 한국의 시조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 없다”고 말했다. 왼쪽은 매캔 교수와 시조 대담을 한 한국의 오종문 시조시인. 오씨는 “매캔의 영어 시조가 음수율을 의외로 잘 지켜 놀랐다”고 말했다. [안성식 기자]    
매캔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이화여대가 마련한 ‘하버드-이화 시조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10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캠퍼스 내 음악관 국악연주홀에서 이 학교 국제대학원생, 국문과·국악과 학생 등 150여 명을 상대로 시조 특강을 했다. 영어 시조를 낭송하고 시조창, 시조를 가사로 활용한 재즈곡을 불렀다.

행사를 하루 앞둔 9일 오후 매캔 교수를 만났다. 그가 묵고 있는 서울 수송동의 호텔 안 음식점에서다. 시조는 특히 형식미를 중시하는 예술 장르다. ‘3-5-4-3’ 음수율(音數律·음절의 수가 일정한 운율)같은 형식적 제약이 여전히 엄격히 지켜진다. 이런 한계가 현대 시조시인들에게는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자유분방하게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캔 교수를 만난 건 다음과 같은 궁금증을 안고서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조의 매력은 무엇일까. 시 번역도 어렵다는데 영어로 번역된 시조는 어떤 모습일까.

매캔을 통해 시조가 미국에 보급되는 현황은 한국문학 세계화의 한 갈래이기도 하다. 이날 만남은 중견 시조시인 오종문(51)씨가 함께했다. 그는 지난해 본지 중앙시조대상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인터뷰는 두 사람의 시조 문답이 됐다.

오씨가 먼저 작품을 한 수 낭송해달라고 청했다. 매캔 교수, 『Urban Temple』을 집어 들었다. 18쪽 ‘First Sijo:A Night in Andong’을 읽어 나갔다. 장과 장 사이, 숨고르기도 했다. 한국어로 ‘첫 번째 시조:안동에서의 하룻밤’인 제목의 시조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One night in Andong(하룻밤 안동 시내)/after a tour of back-alley wine shops, (골목술집 구경하고)//Head spinning, I staggered down(머리가 삥삥 돌 때)/the narrow, paddy-field paths,(밭둑길을 거닐다가)//(…)’

시조는 60년대 말 매캔 교수의 안동 체험을 표현한 것이다. 오씨의 평이 이어졌다. “시조가 구수하다. 음수율도 잘 맞는다.” 오씨는 그러나 “퇴고를 열심히 해야 시조가 단순한 정경 묘사에서 벗어나 시인의 속마음을 담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조 번역에서 음수율까지 맞출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의견도 밝혔다. 그러면서도 “한국어 시조에는 없는 전치사·접속사가 번역하면서 들어가기 때문에 영어 시조는 읽는 맛이 떨어진다. 명사끼리 부딪치더라도 그런 걸 줄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엔 오씨가 자신의 최신작 ‘가을 억새’를 낭송하고 설명했다. 매캔 교수, 반응했다. “너무 좋다. 당신에 비하면 나는 별 생각 없이 쓴다. 많이 배웠다.”

매캔 교수는 시조는 물론 일본의 하이쿠, 중국의 한시도 가르친다. 세 나라의 전통 시가가 어떻게 다르냐는 오씨의 질문에 매캔 교수는 “시조에서는 특유의 제스처, 춤과 같은 어떤 움직임이 느껴진다”고 했다. 또 “장과 장 사이 뜸을 들이는 낭송법이나, 초·중장에서 발전시킨 주제를 종장 첫 머리에서 한 번 비튼 후 후반에 마무리 짓는 작법 등이 미국 학생들에게 실용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시조 쓰고 낭송하는 과정 자체가 가령 프리젠테이션 연습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시조의 형식적 제약 때문에 미국 학생들이 하이쿠나 한시보다 어려워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대담 후 매캔 교수는 올해 말 하버드의 시조 행사에 오씨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오씨 표정이 환해졌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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